하루에 한 번 이메일로 글을 보내는 〈일간 이슬아〉를 시작할 때 했던 결심이 궁금하다.
‘부업을 하나 늘려 보자’ 정도의 다짐이었다. 당시에는 수입이 조금이라도 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메일로 수필이나 단편 소설이 연재된 선례가 없어서 ‘해보면 어떨까’ 하며 낮은 기대치로 시작했다. 50명 정도만 구독해도 월 50만 원의 추가 수입이 생기는 건데, 당시 나에게는 큰 돈이었다. 기대를 하지 않은 건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독자가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등 유료 구독 서비스가 차고 넘치는데 굳이 1만 원을 내고 〈일간 이슬아〉를 구독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창간호 포스터를 보면 그때의 낮은 기대감이 묻어 나온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만든 포스터가 전혀 아니다. 중국집 지라시 오마주다. 그림판으로 만들었다. (웃음)
매일매일 꾸준히 글을 펴내는 ‘기복 없음’의 비결이 있다면?
내 글을 차분히 기다려주는 사람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 연재 초반에는 돈이 아쉬웠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창간호 포스터에 쓴 것처럼 첫해는 2500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만 했다. 두 번째 해는 월세 탈출을 목표로 열심히 했다. 세를 내는 일이 너무 힘들어 전세가 평생 숙원이었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안정적인 정서가 꾸준한 콘텐츠 생산으로 이어진다. 별로 우울하지 않고, 그렇게 즐겁지도 않다. 항상 ‘조(躁)’도 ‘울(鬱)’도 없는 상태다. 기복을 조절하는 방법은 꾸준한 운동이다. 마음은 몸에 담긴다. 몸이 일정한 컨디션이면 마음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요가와 달리기를 주로 한다. 꾸준히 일하고 싶어서 운동을 꾸준히 한다.
‘사랑과 용기를 담아’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글쓰기와 무엇을 사랑하는 마음은 굉장히 비슷하다. 부지런한 글쓰기는 부지런한 사랑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연인을 사랑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할지, 그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는 존재다. 사랑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나한테만 관심 있는, 자아가 비대해진 상태가 난 되게 답답하다.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나만 중요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을 담아 독자에게 보낸다.
‘용기’는 어떤 의미인가.
등단도 아니고, 대형 플랫폼의 지원도 없는 〈일간 이슬아〉로 글을 쓰기까지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화면 너머 얼굴을 모르는 수많은 독자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두려웠다. 타인인 독자에게 내가 좋다고 여기는 이야기를 보내는 일은 매일 어마어마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가끔 독자 편지를 받으면 이분들도 각자 큰 용기를 내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독자 중에는 화장실에서 잠깐 쉬면서 내 글을 읽는 간호사도 있고, 생산 라인에서 일하며 CCTV 없는 사각지대에서 잠깐 스마트폰을 켜고 읽는 분도 계신다. 다들 힘든 하루를 보낸 뒤 자기 전 〈일간 이슬아〉를 읽고 ‘이슬아도 오늘 애썼네. 나도 수고했다’하고 주무시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치열하게 사는 독자들과 연결된 기분이고, 각자 용기를 가지고 살며 서로 말없이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완성되지 않은 글에 구독료를 주신 것도 ‘대(大)용기’다. 그래서 나도 용기를 담아 글을 쓴다.
글감은 어떻게 고르나?
평소 메모를 많이 한다. 많은 글이 한 줄 메모에서 시작한다. 아이폰 메모장에 문장이나 단어, 대사를 간단하게 쓴다. 예를 들어, 추석 때 할아버지께서 ‘갈등’의 어원을 설명해 주셨다. 갈(葛)은 칡덩굴이고, 등(藤)은 등나무다. 칡덩굴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둥을 감아 올라가며 자란다. 두 식물이 한 기둥에 있으면 반대되는 힘으로 치열하게 얽힌다. 칡덩굴과 등나무가 엇갈린 모습이 충돌과 싸움을 연상시켜서 ‘갈등'이라는 단어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메모장에 “갈등의 어원”이라고 적어 놓았다. 꿈의 내용도 적어 놓는다. 꿈 일기가 따로 있다. 친구와 했던 얘기도 좋은 소재다. 데이팅 앱 ‘틴더(Tinder)’ 이야기를 하다가 많은 남자들이 스테이크 등 고기를 굽고 있는 사진을 올린다는 걸 발견했다. 친구가 “아직도 덩어리 고기로 남성성을 증명하나?”라고 말한 게 재밌어서 적어 놨다. 언젠가 글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원재료 같은 메모들이다.
계속 글을 쓰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글쓰기는 계속해서 잘하고 싶은 일이다. 나는 예전부터 책이라는 물건에 매혹된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 기대하는 건 어떤 탁월함인 것 같다. 영상도 있고, 팟캐스트 같은 오디오도 있지만 책만이 해낼 수 있는 탁월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탁월함에 대한 욕망 때문에 계속 글을 써왔다. 쓰다 보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이 아쉽기 때문에, 더 나아지려면 계속 쓰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계속 쓰는 것 같다.